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오레스테스의 죄와 벌을 추적한 고대 그리스 정의관

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

한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신전으로 달아납니다.
그에게는 변명할 이유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하라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뒤에서는 검은 존재들이 따라왔습니다. 잠을 자도 나타났고, 도시를 옮겨도 쫓아왔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니었습니다.

피로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였습니다.

이 존재들이 바로 고대 그리스 신화의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Erinyes)입니다.

에리니에스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무서운 지하세계의 여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혈족 살해, 복수, 죄의 오염인 미아스마(Miasma), 신의 명령, 재판, 시민사회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특히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에서 에리니에스는 고대 그리스가 개인의 복수에서 법과 재판에 의한 정의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에리니에스란 무엇인가

에리니에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살인과 위증, 가족 질서의 파괴 같은 중대한 죄를 추적해 처벌하는 지하세계 계열의 여신들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로마 신화의 명칭에서 유래한 Furies, 즉 퓨리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이 생각하는 단순한 ‘분노의 여신’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에리니에스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혈연을 파괴하는 범죄였습니다.

부모를 죽이는 행위, 자식을 해치는 행위, 가까운 혈족을 살해하는 행위처럼 가족 내부의 자연적 질서를 깨뜨리는 죄는 에리니에스의 주요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개념의미
Erinyes죄인을 추적하는 복수와 응보의 여신들
Furies로마 시대를 거쳐 널리 알려진 영어식 명칭
Miasma살인 등으로 발생한다고 여긴 종교적·사회적 오염
Eumenides에리니에스를 달래기 위해 사용한 ‘자비로운 여신들’이라는 이름
Chthonic deity지하·죽음·대지와 연결된 신격

에리니에스는 누군가 화가 나서 복수해 주는 개인적인 복수 대행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사회보다 더 오래된 질서를 지키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에리니에스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에리니에스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신화의 아주 오래된 창세 신화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공격합니다.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했을 때 그의 피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떨어졌고, 그 피에서 여러 존재가 태어났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에리니에스였습니다.

이 탄생 신화는 상당히 상징적입니다.

에리니에스가 처음부터 ‘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피가 아니라 가족 내부에서 흘린 피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공격한 사건에서 태어난 존재가 이후 가족을 죽인 사람을 추적하게 된 것입니다.

즉 에리니에스의 탄생 자체가 혈족 간 폭력과 복수의 반복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알렉토·메가이라·티시포네, 세 복수의 여신

후대의 그리스·로마 전승에서는 에리니에스를 주로 세 여신으로 구분합니다.

알렉토(Alecto), 메가이라(Megaera), 티시포네(Tisiphone)입니다.

이름일반적으로 해석되는 성격
알렉토 Alecto멈추지 않는 분노
메가이라 Megaera질투와 원한, 적대
티시포네 Tisiphone살인에 대한 응보

다만 초기 그리스 문헌부터 항상 세 여신이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등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호메로스와 초기 문학에서는 에리니에스가 개인 이름을 가진 세 자매라기보다 죄인을 추적하는 강력한 복수의 힘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대 전승을 거치면서 세 명의 개별적인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 꽤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설정 가운데 상당수는 한 시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여러 시인과 작가의 작품이 겹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에리니에스가 가장 두려워한 죄는 혈족 살해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살인은 단순히 피해자 한 명과 가해자 한 명 사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살인이 발생하면 미아스마라고 부르는 오염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가족의 피를 흘린 경우 그 오염은 더욱 심각하게 여겨졌습니다.

에리니에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 어머니를 죽인 아들, 부모에게 중대한 죄를 저지른 자를 추적했습니다.

죄인이 다른 도시로 도망가거나 신에게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쉽게 끝나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에리니에스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법망을 피할 수 있는 범죄자까지 따라오는 존재였습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법정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도덕적 추적자에 가까웠습니다.


미아스마란 무엇인가

에리니에스를 이해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전문용어가 미아스마(Miasma)입니다.

미아스마는 흔히 ‘오염’이라고 번역하지만 단순한 위생상의 오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살인이나 근친 관계, 신성모독과 같은 중대한 금기를 어겼을 때 인간과 공동체에 생긴다고 생각했던 종교적·도덕적 오염입니다.

살인자는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오염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염이 제대로 정화되지 않으면 가족이나 도시 전체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 죄는 상당히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범죄자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죄가 가족과 도시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에리니에스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줄팁: 에리니에스를 이해하려면 ‘복수’보다 먼저 ‘피로 생긴 오염을 끝까지 추적하는 신’이라고 기억하시면 전체 이야기가 훨씬 쉽게 연결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오레스테스의 모친살해

에리니에스가 가장 강렬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Orestes)의 이야기입니다.

배경에는 트로이 전쟁이 있습니다.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떠나기 전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켰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의 죽음에 분노합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자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연인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남편을 살해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아버지의 복수라는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오레스테스는 결국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입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으니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죄가 만들어집니다.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면 어머니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합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에리니에스는 왜 오레스테스를 추격했을까

오레스테스에게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습니다.

태양과 예언의 신 아폴론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고 명령했다는 전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리니에스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어머니의 피였습니다.

모친살해라는 행위 자체가 에리니에스가 지키는 오래된 혈연 질서를 침해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 신화의 중요한 충돌이 나타납니다.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보호합니다.

에리니에스는 오레스테스를 처벌하려 합니다.

그러자 문제가 단순한 인간의 살인 사건을 넘어 신들의 정의관이 충돌하는 사건으로 바뀝니다.

누가 옳은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는 의무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어머니를 죽인 죄가 더 무거운가.

아이스킬로스는 이 질문을 간단하게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2,00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입니다.


코리의 중간생각

에리니에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오레스테스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살해되었고 신의 명령까지 받았으니 복수할 이유가 충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를 죽인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이상합니다.

결국 이 신화가 던지는 질문은 누가 착하고 나쁜가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정의가 있을 때 인간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훨씬 어려운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에리니에스는 괴물보다 법과 정의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델포이에서 아테네까지 이어진 추격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마지막 작품인 『에우메니데스』는 에리니에스의 추격을 본격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의 델포이 신전으로 피신합니다.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정화하고 보호하려 합니다.

하지만 에리니에스는 추격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아테네로 향해 아테나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신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피에는 피로 갚는 복수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아테나는 자신이 혼자 판결하지 않습니다.

재판을 열기로 결정합니다.

배심 역할을 하는 시민들이 증언과 주장을 듣고 판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수의 문제가 재판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아레오파고스 재판과 고대 그리스 법의 상징

오레스테스 재판의 무대는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Areopagus)입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실제 고대 아테네에 존재했던 중요한 정치·사법 기관과 연결되는 장소입니다.

다만 『에우메니데스』의 이야기를 실제 아레오파고스 법정의 역사적 창설 사건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아이스킬로스가 기존의 아테네 제도에 신화적인 기원을 부여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작품 속에서 에리니에스는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폴론은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살해에 복수했으며 자신의 명령에 따랐다고 변호합니다.

양측의 논리가 충돌합니다.

결국 표가 팽팽하게 갈립니다.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고 그는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레스테스가 풀려났다는 결말이 아닙니다.

오래된 복수의 질서를 대표하던 에리니에스가 처음으로 제도화된 재판에 의해 자신의 권한을 제한받았다는 점입니다.


에리니에스가 분노한 이유

재판 결과가 나오자 에리니에스는 크게 분노합니다.

자신들이 수호해 온 오래된 질서가 무시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단순히 ‘나쁜 복수의 여신이 패배했다’고 해석하면 작품의 핵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아이스킬로스는 에리니에스를 없애지 않습니다.

아테나는 그들을 아테네의 새로운 질서 안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존경과 제사를 약속합니다.

이 장면에는 상당히 현실적인 정치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새로운 법질서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오래된 관습과 감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새로운 제도 안에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아테나는 에리니에스를 파괴하는 대신 시민사회의 수호자로 바꾸어 놓습니다.


복수의 여신이 에우메니데스가 된 이유

에리니에스는 이후 에우메니데스(Eumenides)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에우메니데스는 일반적으로 ‘자비로운 존재들’, ‘선의를 베푸는 여신들’ 정도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상당히 역설적인 이름입니다.

죄인을 끝까지 추격하던 무서운 여신들에게 자비로운 여신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위험한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일을 꺼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좋은 이름을 붙여 그 존재를 달래려는 완곡한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이들과 관련해 셈나이 테아이(Semnai Theai), 즉 ‘존엄한 여신들’이라는 표현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에우메니데스』에서의 변화는 단순한 이름 변경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수를 담당하던 힘이 공동체를 보호하는 힘으로 편입되기 때문입니다.


피의 복수에서 재판의 정의로

에리니에스 신화가 고대 유럽사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초기 사회에서는 살인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가족이 복수하는 관습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A가 B를 죽입니다.

B의 가족이 A를 죽입니다.

그러면 A의 가족이 다시 B의 가족을 죽입니다.

이 구조에는 끝이 없습니다.

오레스테스의 가문인 아트레우스 왕가의 비극 역시 이런 복수의 연쇄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개인이 직접 복수하지 않습니다.

증언하고 논쟁하고 판결합니다.

다시 말해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가 개인과 가족에서 폴리스(Polis), 즉 공동체로 옮겨갑니다.

이 때문에 『에우메니데스』는 서양 고전문학뿐 아니라 법과 정치사상의 관점에서도 자주 논의되는 작품입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이 이야기가 특별했던 이유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기원전 458년에 공연되었습니다.

당시는 아테네의 민주정과 정치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아레오파고스 평의회의 정치적 권한을 축소하는 에피알테스의 개혁이 기원전 462~461년 무렵 이루어진 직후였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에우메니데스』에 등장하는 아레오파고스와 재판 장면을 당시 아테네의 정치 변화와 연결해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 작품을 특정 정치개혁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단순한 정치 선전물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아테네인들에게 ‘누가 정의를 판단할 권한을 가지는가’라는 문제가 매우 현실적인 주제였다는 점입니다.

에리니에스 신화는 오래된 종교적 질서와 새로운 시민적 법질서가 충돌하고 조정되는 모습을 신들의 이야기로 보여주었습니다.


에리니에스와 네메시스는 무엇이 다를까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에리니에스와 네메시스(Nemesis)를 혼동하기 쉽습니다.

둘 모두 인간의 잘못에 대한 응보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격은 조금 다릅니다.

구분에리니에스네메시스
핵심 역할중대한 죄와 혈족 살해 추적지나친 오만과 불균형에 대한 응보
주요 대상살인자·혈족 범죄자·맹세 위반자오만한 인간, 지나친 행운을 누리는 자
대표 개념피의 죄, 미아스마, 복수균형, 응보, 휘브리스
이미지지하세계와 연결된 추적자질서를 회복하는 응보의 여신

에리니에스가 특히 가족과 피의 죄를 추적한다면 네메시스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지나친 오만, 즉 휘브리스(Hybris)에 빠졌을 때 균형을 회복하는 개념과 더 강하게 연결됩니다.

두 존재 모두 고대 그리스인이 세상을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구조로 이해했음을 보여줍니다.


에리니에스의 모습은 왜 그렇게 무섭게 묘사되었을까

후대 문학과 미술에서 에리니에스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표현됩니다.

머리에 뱀이 얽혀 있거나 손에 채찍이나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때로는 검은 옷을 입고 피를 갈망하는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이 이미지는 죄인이 느끼는 공포와 죄책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에리니에스에게서 도망치는 일이 단순한 물리적 추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레스테스가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이들은 계속 따라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이를 죄책감이나 트라우마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도시로 도망갈 수 있지만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기억에서는 쉽게 도망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리니에스는 고대의 종교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심리까지 건드리는 독특한 신격이 되었습니다.


에리니에스가 보여주는 고대 그리스의 죄와 벌

에리니에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의 죄 개념은 현대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형법에서는 범죄의 구성요건, 의도, 증거, 책임능력 등을 따집니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행동 자체가 우주적·종교적 질서를 흔들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개인적인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가족은 사회 질서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였습니다.

따라서 혈족을 죽이는 행위는 단순한 살인을 넘어 자연적 질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에리니에스는 그 질서를 지키는 존재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질서 역시 영원히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에우메니데스』에서 복수의 여신은 사라지지 않지만 재판이라는 새로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옵니다.

고대 신화가 사회 변화까지 담아내는 순간입니다.


왜 에리니에스 이야기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에리니에스 신화에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정당한 복수란 존재하는가.

명령을 받아 저지른 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해자의 분노와 사회의 법질서가 충돌하면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는 것과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오레스테스 사건에는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가멤논은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을 살해합니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죽입니다.

그러자 에리니에스가 그를 추적합니다.

한 번 시작된 피의 복수는 스스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복수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오레스테이아』에서는 그 역할을 법과 재판이 맡습니다.

그래서 에리니에스 이야기는 괴물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문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끝납니다.


에리니에스와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는 하나의 비극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 전체를 넓게 보면 신들의 질서가 만들어진 뒤 인간 영웅들이 등장하고, 그 영웅들의 선택과 복수, 죄와 운명이 다시 비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됩니다.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같은 영웅들이 괴물과 외부의 위협에 맞섰다면,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는 인간 내부의 죄와 책임, 가족과 법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결국 그리스 신화는 단순히 신과 영웅의 모험을 모아 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운명과 선택 사이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계속 묻는 거대한 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함께 보면 「그리스 신화 심화 흐름 완전정리|영웅 서사와 비극이 만든 고대 그리스 상상력과 운명관」 에서 영웅 시대가 어떻게 비극으로 넘어가고, 복수와 운명이라는 주제가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 FAQ

Q1. 에리니에스는 정확히 몇 명인가요?

후대의 대표적인 전승에서는 알렉토, 메가이라, 티시포네 세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 문학에서는 항상 세 명의 개별적인 신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와 작가에 따라 집단적인 복수의 여신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Q2. 에리니에스는 왜 오레스테스만 처벌하려 했나요?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직접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에리니에스는 특히 혈족 간 살인과 부모에 대한 범죄에 강하게 반응하는 존재였습니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수행했고 아폴론의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도 에리니에스에게는 모친살해라는 행위 자체를 없애 주는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Q3. 에리니에스와 에우메니데스는 다른 여신인가요?

기본적으로 같은 존재를 가리킵니다. 『오레스테이아』 마지막 작품에서 아테나는 분노한 에리니에스를 아테네의 새로운 질서 안으로 받아들이고 존경받는 신으로 대우합니다. 에우메니데스라는 이름에는 무서운 존재를 좋은 이름으로 불러 달래려는 종교적 의미와 복수의 힘이 공동체의 질서 안으로 편입되는 상징성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 참고자료

헤시오도스, 『신통기(Theogony)』

아이스킬로스, 『오레스테이아(Oresteia)』

  • 『아가멤논(Agamemnon)』
  •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The Libation Bearers)』
  • 『에우메니데스(Eumenides)』

호메로스, 『일리아스(Iliad)』, 『오디세이아(Odyssey)』

에우리피데스, 『오레스테스(Orestes)』, 『엘렉트라(Electra)』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Bibliotheca)』

The Oxford Classical Dictionary, Erinyes 관련 항목

Cambridge Greek and Latin Classics, Aeschylus와 Oresteia 관련 연구 자료

Encyclopedia Britannica | Britannica


코리의 생각

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를 조사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 여신들이 마지막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레스테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에리니에스가 악으로 규정되어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테나는 그들에게 새로운 자리와 역할을 줍니다.

이 장면은 꽤 현실적입니다.

사회가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분노나 복수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개인의 폭력으로 해결할 것인지, 공동체의 법과 제도 안에서 해결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피의 복수를 담당했던 에리니에스가 마지막에는 도시를 지키는 존재가 된다는 설정도 그래서 의미가 큽니다.

결국 『오레스테이아』에서 문명이란 복수가 사라진 세계가 아니라 복수를 법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리니에스는 단순한 ‘복수의 여신’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죄와 책임, 가족, 정의, 재판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만들어 낸 아주 오래된 질문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   피로 이어진 복수에서 법과 재판의 정의로, 오레스테스를 추적한 에리니에스는 고대 그리스가 죄와 벌을 바라본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여신들입니다.
에리니에스 복수의 여신 : 피로 이어진 복수에서 법과 재판의 정의로, 오레스테스를 추적한 에리니에스는 고대 그리스가 죄와 벌을 바라본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여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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