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문화 교류: 낯선 향 냄새가 유럽의 식탁을 바꾸던 순간
중세 유럽의 어느 항구 도시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새벽 안개가 깔린 부두에 배 한 척이 들어오고, 상인들은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내립니다. 그 안에는 밀이나 보리처럼 익숙한 곡물이 아니라, 후추, 계피, 정향, 비단, 유리그릇, 염료, 낯선 문양의 금속 공예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물건 앞에서 사람들은 웅성거렸을 겁니다.
“이 향은 어디서 온 걸까?”
“이 천은 왜 이렇게 부드럽지?”
“저 문양은 기독교식도, 로마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아름답지?”
중세 문화 교류는 바로 이런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왕과 교황이 명령한 전쟁, 성지를 향한 순례, 상인들의 이익 계산, 도시의 성장, 항구의 소문이 한데 섞이면서 유럽의 생활문화는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특히 십자군 전쟁과 지중해 무역은 단순히 군사적 사건이 아니라, 중세 유럽이 더 넓은 세계와 마주하게 된 강력한 통로였습니다.
중세 문화 교류란 무엇일까?
중세 문화 교류는 한 지역의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음식, 기술, 예술, 언어, 종교, 생활방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교류가 항상 평화롭게만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역은 물건을 통해 문화를 옮겼고, 전쟁은 충돌 속에서도 기술과 예술품을 이동시켰습니다. 순례는 사람의 이동을 만들었고, 외교는 선물과 문서를 주고받게 했습니다. 특히 지중해 세계는 기독교 유럽, 비잔티움 제국, 이슬람 세계가 만나는 거대한 접점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1095년 이후 서유럽 기독교 세력이 예루살렘과 성지를 둘러싸고 벌인 군사 원정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결과는 전장에만 남지 않았습니다. 유럽인들은 레반트, 비잔티움, 이슬람 도시, 동방 무역망을 접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물건과 지식, 취향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십자군 시기 예술품에서 이슬람적 미감과 기독교적 주제가 함께 나타나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십자군은 전쟁이었지만, 문화 교류의 통로이기도 했다
십자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전쟁입니다. 실제로 십자군은 폭력, 점령, 약탈, 종교적 갈등을 동반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을 낭만적인 교류로만 보면 안 됩니다. 많은 도시가 피해를 입었고,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불신도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늘 한쪽 얼굴만 가진 사건이 아닙니다. 군대가 이동하면 보급품이 이동하고, 기사와 병사가 이동하면 통역자, 상인, 성직자, 장인도 따라 움직입니다. 항구 도시들은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돈을 벌었고, 십자군 국가 주변에는 상업 거점이 생겼습니다.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같은 이탈리아 해상 도시국가는 이 흐름 속에서 지중해 무역의 강자로 성장했습니다.
중세 유럽 입장에서 레반트 지역은 단순한 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향신료, 비단, 면직물, 유리, 금속공예품, 의학 지식, 수학과 천문학 관련 지식이 오가던 접점이었습니다. 월드 히스토리 엔사이클로피디아는 십자군이 지중해 국제무역을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며, 특히 이탈리아 해상 도시들이 동서 무역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정리합니다.
지중해 무역이 만든 변화: 유럽의 식탁이 달라지다
가장 체감하기 쉬운 변화는 음식입니다. 중세 유럽의 일반적인 식단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빵, 죽, 콩류, 치즈, 맥주, 포도주, 절인 고기 같은 식품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지중해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상류층과 도시 부유층 사이에서는 향신료 소비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후추, 계피, 생강,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는 단순한 양념이 아니었습니다. 비싼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부와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귀족의 연회에서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소스가 등장했다면, 그것은 “우리는 먼 곳의 물건을 살 수 있는 집안”이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 상인은 동방에서 온 향신료를 이집트나 레반트 항구를 통해 들여오고, 다시 유럽 각지로 유통했습니다. 향신료는 약재, 음식 보존, 의례, 사치품의 성격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즉, 중세 유럽의 식탁에 놓인 후추 한 알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인도양, 이슬람 상인, 지중해 항구, 이탈리아 상업망이 연결된 결과물이었습니다.
한줄팁: 중세 문화 교류를 이해할 때는 “전쟁이 문화를 바꿨다”보다 “전쟁, 무역, 순례, 도시 성장이 함께 문화를 움직였다”로 보면 훨씬 정확합니다.
비단과 직물, 유럽의 옷차림을 바꾸다
중세 문화 교류에서 의복과 직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단, 다마스크, 면직물, 염료, 카펫 같은 물품은 유럽 귀족과 성직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고급 직물은 옷뿐 아니라 제단 장식, 성물 보관함 포장, 궁정 장식, 외교 선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비단은 단순히 부드러운 천이 아니었습니다. 빛이 나는 표면, 정교한 문양, 낯선 동물과 식물 무늬는 권위와 신성함을 표현하는 데 잘 맞았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동방에서 온 직물이 성인의 유해를 감싸는 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직물은 수입 사치품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권위를 강화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문양입니다. 중세 유럽 장식품과 직물에는 때때로 아랍 문자처럼 보이는 장식, 이슬람식 식물무늬, 기하학적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전문적으로는 의사 아랍 문자풍 장식, pseudo-Arabic ornamen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 의미를 읽기 위한 글자가 아니라,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장식 요소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네치아는 어떻게 문화 교류의 중심이 되었나?
중세 문화 교류를 설명할 때 베네치아는 거의 빠질 수 없는 도시입니다. 베네치아는 지리적으로도 절묘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 동북부의 석호 위에 자리 잡아 아드리아해와 지중해로 나가기 좋았고, 비잔티움과 이슬람 세계, 서유럽을 연결하는 중간 상업지 역할을 했습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집트, 시리아, 콘스탄티노플, 흑해 주변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판 것이 아니라 항구, 창고, 거류지, 외교 관계, 선박 운송망을 함께 운영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베네치아가 이슬람 세계와 오랜 기간 상업, 외교, 예술적 관계를 맺었으며, 무역과 여행, 외교가 예술적 아이디어 교류의 핵심 통로였다고 설명합니다.
실사례로 산마르코 대성당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성 마르코 유해를 도시의 상징으로 삼았고, 동방과 비잔티움에서 들어온 장식 요소를 도시 정체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1204년 제4차 십자군 이후 콘스탄티노플의 예술품과 성물이 서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베네치아와 여러 유럽 교회는 비잔티움 문화의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약탈의 결과이기도 했고, 동시에 서유럽 미술과 종교 장식의 취향을 바꾼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코리의 중간생각
이 부분을 쓰다 보면 조금 조심스러워집니다.
십자군을 문화 교류의 계기로만 말하면 전쟁의 폭력성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의 피해만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주고받은 물건과 지식의 흐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중세 문화 교류는 아름다운 만남만도 아니고, 완전한 단절만도 아니었습니다.
충돌과 필요, 욕망과 호기심이 뒤섞인 복잡한 변화였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이슬람 세계의 지식은 유럽 학문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중세 유럽의 문화 변화는 물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식도 이동했습니다. 특히 이슬람 세계는 고대 그리스 철학, 의학, 수학, 천문학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중요한 지적 공간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갈레노스 의학, 유클리드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같은 고전 지식은 아랍어 번역과 주석을 거쳐 다시 라틴어권 유럽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 모든 흐름이 십자군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페인 톨레도 번역학교, 시칠리아, 남이탈리아, 비잔티움, 이베리아 반도처럼 다양한 접촉 지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과 지중해 무역은 유럽인들이 이슬람 세계와 비잔티움의 지적 수준을 더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만든 배경 중 하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 학문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학이 성장하고, 스콜라 철학이 발전하고, 논리학과 자연철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의학에서는 아비센나, 즉 이븐 시나의 의학 전통이 라틴어권에 영향을 주었고, 수학에서는 아라비아 숫자와 계산법의 확산이 상업 실무와 회계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중세 문화 교류는 그래서 “예쁜 물건이 들어왔다” 정도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과 기록하는 방식까지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상업혁명과 도시 성장: 돈의 흐름이 문화를 바꾸다
십자군과 지중해 무역이 만들어낸 또 다른 변화는 상업혁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업혁명은 중세 후기에 유럽의 장거리 무역, 금융, 도시 경제, 상인 계층이 성장한 흐름을 말합니다.
전쟁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배도 필요하고, 무기도 필요하고, 식량도 필요합니다. 병력을 실어 나르는 해상 운송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 큰 기회를 주었습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도시는 십자군을 통해 군사 운송 계약을 얻고, 동방 항구의 상업 특권을 확보하고, 무역 거점을 넓혔습니다.
이런 변화는 유럽 도시 문화를 바꿨습니다. 시장이 커지고, 길드가 성장하고, 상인과 은행가의 영향력이 강해졌습니다. 환어음, 신용거래, 동업 투자 같은 금융 기술도 장거리 무역과 함께 발달했습니다. 먼 곳에서 물건을 사 오려면 지금 현금을 들고 직접 이동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중세 문화 교류는 귀족과 성직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항구의 선원, 창고 관리인, 장부를 쓰는 서기, 환전상, 직물 장인, 향신료를 파는 상인까지 모두 이 흐름의 일부였습니다. 문화는 왕궁에서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시장 골목에서도 바뀝니다.
예술과 건축에 남은 교류의 흔적
중세 유럽 미술을 보면 문화 교류의 흔적이 생각보다 선명합니다. 십자군 시기 성지와 비잔티움, 이슬람 세계의 예술품이 유럽으로 이동했고, 유럽 장인들은 낯선 문양과 재료를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금속공예, 성물함, 제단 장식, 필사본 장식, 직물 문양에는 비잔티움과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섞여 나타났습니다. 스마스히스토리는 십자군 시기의 물질문화가 서유럽, 비잔티움, 이슬람 시각 전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건축에서도 교류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뾰족아치, 돔, 정교한 기하학 장식, 빛을 활용한 공간 구성은 여러 문화권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물론 고딕 건축을 단순히 이슬람 건축의 모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세 지중해 세계에서 다양한 건축 기술과 미감이 오간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노르만 시칠리아는 좋은 사례입니다. 시칠리아는 라틴 기독교, 그리스 비잔티움, 아랍 이슬람 문화가 만난 공간이었습니다. 팔레르모의 궁정 문화와 건축 장식은 여러 전통이 공존하고 결합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지역을 보면 중세 유럽은 결코 폐쇄된 세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향신료, 설탕, 종이: 일상 속으로 들어온 세계
문화 교류는 거창한 예술품에만 남지 않았습니다. 일상 물건도 유럽인의 생활을 바꿨습니다.
첫째, 향신료는 음식문화를 바꾸었습니다. 후추와 계피는 부유층의 식탁에서 신분 상징이 되었고, 의학적 효능을 기대하는 약재로도 쓰였습니다.
둘째, 설탕은 처음에는 매우 귀한 약재이자 사치품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지중해 섬과 식민적 플랜테이션 경제와 연결되면서 유럽 식문화에 더 깊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흐름은 훗날 근대 대서양 무역과도 연결됩니다.
셋째, 종이의 확산도 중요합니다. 종이는 중국에서 기원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대표적 기술 중 하나입니다. 종이가 널리 쓰이면서 기록, 장부, 행정, 학문, 상업 문서의 생산이 더 쉬워졌습니다. 장거리 무역이 복잡해질수록 계약서, 회계장부, 편지, 항해 기록의 중요성도 커졌습니다.
넷째, 유리와 금속공예 기술도 이동했습니다. 베네치아 유리는 훗날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 배경에는 이슬람 세계와 비잔티움의 유리 제작 전통과의 접촉도 있었습니다.
십자군 교류를 볼 때 피해야 할 오해
중세 문화 교류를 이해할 때 몇 가지 오해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 번째 오해는 “십자군이 유럽을 갑자기 문명화했다”는 식의 단순화입니다. 유럽은 이미 내부적으로 농업 생산력 증가, 도시 성장, 수도원 문화, 대학 형성 같은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십자군은 그 변화를 만든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 여러 변화 중 하나의 촉진 요인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두 번째 오해는 “동양의 우월한 문화가 유럽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갔다”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문화 교류는 일방통행이 아니었습니다. 유럽, 비잔티움, 이슬람 세계, 중앙아시아, 인도양 무역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유네스코는 실크로드를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육상·해상 루트가 얽힌 교류망으로 설명하며, 상품뿐 아니라 사상과 문화, 지식이 오갔다고 정리합니다.
세 번째 오해는 “전쟁 중에는 교류가 불가능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전쟁과 교역은 이상하게도 같은 시기에 공존했습니다. 군대는 싸우고 있었지만, 상인은 물건을 팔았고, 포로는 언어를 배웠고, 외교 사절은 선물을 주고받았습니다. 적대와 거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중세 지중해 세계의 복잡한 현실이었습니다.
실사례로 보는 중세 문화 교류
1. 베네치아 상인과 향신료 무역
베네치아 상인은 이슬람 상인과 거래하며 동방 물품을 유럽으로 들여왔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배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정보와 신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항구에서 후추 가격이 오르는지, 어느 항로가 안전한지, 어떤 정치 세력과 협상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향신료는 유럽에서 비싸게 팔렸고, 그 이익은 도시의 궁전, 교회, 공공건축, 예술 후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중세 베네치아의 화려함 뒤에는 지중해 무역망이 있었습니다.
2. 제4차 십자군과 콘스탄티노플의 예술품 이동
1204년 제4차 십자군은 원래 성지를 향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 비잔티움의 성물, 보석, 금속공예품, 장식품이 서유럽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이것은 분명 폭력적 약탈의 역사입니다. 동시에 그 물건들이 서유럽 교회와 궁정에 들어가면서 비잔티움 양식에 대한 동경과 모방도 커졌습니다. 즉, 한 사건 안에 파괴와 전파가 동시에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3. 십자군 국가의 항구 도시 아크레
아크레는 십자군 시기 중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곳에는 기사단, 상인, 성직자, 순례자, 현지 주민, 이탈리아 상업 공동체가 뒤섞였습니다. 항구에는 유럽에서 온 배가 들어오고, 동방 물품이 거래되었으며, 언어와 관습이 섞였습니다.
이런 도시는 문화 교류의 현장이었습니다. 왕궁이나 전장보다 시장과 항구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싸우면서도 거래했고, 두려워하면서도 배웠고, 낯설어하면서도 따라 했습니다.
중세 문화 교류가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에 준 영향
중세 문화 교류는 훗날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지중해 무역을 통해 동방 물품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더 직접적인 항로를 찾으려는 욕망을 키웠습니다. 향신료를 중간 상인 없이 직접 얻고 싶다는 경제적 동기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해양 진출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로마 지식의 재수용, 아랍어 문헌의 라틴어 번역, 비잔티움 학자들의 이동은 르네상스 지성사와도 연결됩니다. 르네상스가 어느 날 갑자기 이탈리아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중세 후기에 쌓인 도시 경제, 무역, 학문 교류, 고전 지식 회복의 결과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만 부르면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중세 유럽은 느리지만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책이 복사되고, 항구에서 향신료가 거래되고, 대학에서 논리학이 토론되고, 장인들이 낯선 문양을 자기 작품에 새기던 시대였습니다.
중세 문화 교류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유럽 내부의 생활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함께 보게 됩니다. 십자군과 지중해 무역은 향신료와 비단만 들여온 것이 아니라, 고딕 건축의 공간 감각, 성가와 다성음악의 발전, 기사 문학과 궁정 문화, 도시 축제와 연극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쟁과 무역만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았던 성당, 시장, 수도원, 궁정, 광장의 분위기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이런 흐름은 「중세 유럽 문화와 예술 완전정리: 고딕 건축·음악·문학으로 읽는 생활사」 에서 더 넓게 이어집니다.
그 글에서는 고딕 성당이 왜 하늘을 향해 솟았는지, 중세 음악은 어떤 공간에서 울려 퍼졌는지, 문학과 예술이 사람들의 신앙과 일상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활사 관점에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코리의 생각 정리
중세 문화 교류를 한 줄로 정리하면, “십자군과 무역이 유럽을 더 넓은 세계와 강제로 연결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십자군은 전쟁이었지만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크게 늘렸습니다.
둘째, 지중해 무역은 향신료, 비단, 유리, 금속공예, 지식의 이동을 촉진했습니다.
셋째,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해상 도시국가는 이 흐름을 이용해 부와 권력을 키웠습니다.
넷째, 이슬람 세계와 비잔티움의 예술, 학문, 기술은 유럽 문화에 깊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다섯째, 중세 문화 교류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의 배경으로 이어졌습니다.
코리가 보기에는, 중세 유럽사는 전쟁사만 보면 너무 딱딱하고, 문화사만 보면 너무 예쁘게 포장됩니다. 진짜 재미는 그 중간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싸우고, 장사하고, 배우고, 훔치고, 따라 하고, 다시 자기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 말입니다. 그 복잡한 움직임이 결국 유럽의 식탁, 옷장, 시장, 교회, 대학, 항구 도시를 바꿨습니다.
Q&A
Q1. 십자군 전쟁이 유럽 문화 발전의 직접 원인이었나요?
직접 원인 하나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유럽 문화 변화에는 농업 생산력 증가, 도시 성장, 대학 발달, 상업혁명, 이베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의 번역 활동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다만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이 지중해 동부와 이슬람 세계, 비잔티움 문화를 더 직접적으로 접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Q2.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교역품은 무엇인가요?
대표적으로 향신료, 비단, 고급 직물, 염료, 유리제품, 금속공예품, 종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중 향신료와 비단은 부와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컸고, 종이는 기록과 행정, 상업 문서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Q3. 중세 문화 교류는 평화로운 교류였나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무역, 외교, 순례처럼 비교적 평화로운 교류도 있었지만, 십자군 전쟁, 콘스탄티노플 약탈, 종교 갈등처럼 폭력적인 사건도 많았습니다. 중세 문화 교류는 평화로운 만남만이 아니라 충돌, 약탈, 거래, 모방, 적응이 뒤섞인 복합적인 역사 현상입니다.
참고자료
이 글은 중세 문화 교류, 십자군 전쟁, 지중해 무역, 베네치아와 이슬람 세계의 관계, 실크로드 문화 교류, 중세 물질문화 연구 자료를 참고해 정리했습니다.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Crusades (1095–1291)”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Venice and the Islamic World, 828–1797”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Venice and the Islamic World: Commercial Exchange, Diplomacy, and Religious Difference”
- UNESCO, “About the Silk Roads”
- UNESCO Silk Roads Programme, “Cities along the Silk Roads”
- Smarthistory, “Material Culture of the Crusades”
- World History Encyclopedia, “The Crusades: Consequences & Effects”
- World History Encyclopedia, “Trade in Medieval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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