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바두르란 무엇인가|궁정 사랑을 노래한 중세 유럽 음유시인과 기사도 문화

밤이 깊은 성 안, 촛불이 길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거운 갑옷을 벗은 기사들은 긴 식탁 곁에 앉아 있었고, 귀족 여성들은 조용히 시선을 나누었다. 그때 한 사람이 작은 현악기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크게 외치지 않았다. 대신 닿을 수 없는 사랑, 귀부인에 대한 존경, 기사가 지켜야 할 품위와 절제를 노래했다.

그 사람이 바로 트루바두르였다.

트루바두르를 그냥 “중세 음유시인”이라고만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물론 그들은 노래했고, 악기를 들고 궁정을 다녔으며, 사랑을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트루바두르는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무렵까지 남프랑스, 즉 오크어권 Occitania 궁정문화에서 활동한 시인·작곡가·공연자였다. 옛 오크어, 또는 프로방스어로 서정시를 짓고 노래했으며, 그들의 노래는 중세 유럽의 사랑관과 기사도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Oxford Bibliographies는 트루바두르를 남부 프랑스 지역의 오크어권에서 활동한 초기 세속 노래 창작자들로 설명한다.

트루바두르란 무엇인가

트루바두르 Troubadour라는 말은 옛 프로방스어 또는 오크어의 trobador와 관련이 있다. 이 말은 “시를 짓다, 노래를 만들다, 찾아내다”라는 의미의 trobar에서 온 말로 설명된다. 프랑스 아카데미 사전도 troubadour의 어원을 옛 프로방스어 trobador, 즉 시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리한다.

그래서 트루바두르는 단순히 남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직접 시를 만들고, 선율을 붙이고, 궁정에서 공연했다. 오늘날로 치면 시인,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사회평론가, 궁정 예술가의 역할을 조금씩 합친 존재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트루바두르가 주로 라틴어가 아닌 민중 언어, 즉 오크어로 창작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는 교회와 학문의 언어였다. 그런데 트루바두르들은 귀족 사회의 감정, 사랑, 명예, 풍자, 정치적 메시지를 지역 언어로 노래했다. 이 점 때문에 트루바두르는 중세 유럽에서 세속 문학과 민족어 문학이 성장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왜 남프랑스에서 트루바두르가 꽃피었을까

트루바두르 문화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남프랑스, 특히 프로방스, 아키텐, 툴루즈, 리무쟁 같은 지역이었다. 이곳은 북프랑스와 언어도 달랐고, 정치 문화도 조금 달랐다. 남쪽에서는 오크어, 즉 langue d’oc 계열 언어가 쓰였고, 북쪽에서는 프랑스어의 전신인 langue d’oïl 계열 언어가 쓰였다.

남프랑스 궁정은 비교적 세련된 귀족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기사, 영주, 귀부인, 성직자, 시인들이 궁정 안에서 만나고, 노래와 시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신분과 교양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The Troubadours』 소개에서도 트루바두르가 궁정적 삶과 궁정 사랑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문화가 서유럽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꼭 봐야 할 점은 “궁정”이다. 트루바두르의 노래는 시장 한복판의 민요와 달랐다. 물론 떠돌며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이 노래한 세계는 주로 성과 궁정, 귀족의 후원, 기사도 윤리, 귀부인에 대한 찬미와 연결되어 있었다.

궁정 사랑, 피나모르란 무엇인가

트루바두르를 이해하려면 궁정 사랑 Courtly Love을 빼놓을 수 없다. 중세 문학에서 궁정 사랑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었다. 더 정확한 전문용어로는 오크어의 피나모르 fin’amor라고 부른다. 이는 “세련된 사랑”, “정제된 사랑”, “고귀한 사랑”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Occitanica는 fin’amor를 중세 오크 문학에서 트루바두르들이 발전시킨 사랑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피나모르의 기본 구조는 이렇다. 한 기사가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거나 쉽게 닿을 수 없는 귀부인을 사랑한다. 그는 사랑을 얻기 위해 무례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인내, 절제, 충성, 예절, 말의 아름다움, 행동의 품위를 통해 자신을 갈고닦는다. 사랑은 욕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수양의 과정이 된다.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중세 봉건제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봉건제에서 신하는 주군에게 충성을 바친다. 트루바두르의 사랑 노래에서는 연인이 귀부인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래서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봉건적 예절과 기사도 윤리를 반영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궁정 사랑의 이른 표현을 12세기 남프랑스 트루바두르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트루바두르의 대표 장르

트루바두르의 노래는 모두 똑같은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 주제와 형식에 따라 여러 장르가 있었다.

장르뜻과 특징주요 내용
칸소 canso가장 대표적인 사랑 노래귀부인 찬미, 피나모르, 사랑의 고통
시르벤테스 sirventes풍자와 정치 노래영주 비판, 전쟁, 사회 풍자
알바 alba새벽 노래밤을 보낸 연인들이 새벽에 헤어지는 장면
파스토렐라 pastorela목가적 만남의 노래기사와 목동 소녀의 대화
텐소 tenso논쟁시두 사람이 사랑·윤리·정치를 두고 주고받음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칸소다. 칸소는 궁정 사랑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서정시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닿지 못하는 괴로움, 그럼에도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리움이 칸소의 핵심이었다.

반면 시르벤테스는 조금 더 날카롭다. 오늘날로 치면 정치 풍자 노래에 가깝다. 전쟁을 비판하거나, 영주를 조롱하거나, 사회의 모순을 꼬집었다. 이 때문에 트루바두르는 사랑만 노래한 낭만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귀족 사회 내부의 여론을 움직이는 발언자이기도 했다.

실사례 1: 기욤 9세, 귀족이자 최초기의 트루바두르

트루바두르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아키텐 공작 기욤 9세 Guillaume IX, William IX of Aquitaine다. 그는 강력한 귀족이었고, 동시에 초기 트루바두르로 평가된다. 한국 KCI 논문도 기욤 9세에서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까지 이어지는 트루바두르 시에서 피나모르의 문학적 표현과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면서, 기욤 9세가 초기에는 노골적이고 세속적인 시를 쓰다가 점차 귀부인에 대한 복종과 세련된 사랑의 표현으로 나아간 흐름을 설명한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트루바두르가 꼭 가난한 떠돌이 악사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떤 트루바두르는 귀족이었다. 어떤 이는 기사였고, 어떤 이는 궁정의 전문 예술가였다. 즉 트루바두르 문화는 단순한 하층 공연문화가 아니라 귀족 사회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된 고급 세속문화였다.

기욤 9세의 존재는 중세 유럽 귀족이 칼만 든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전쟁과 정치의 세계에 살면서도 시와 노래를 통해 자신의 욕망, 유머, 사랑, 권력을 표현했다.

실사례 2: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 궁정 사랑의 목소리

트루바두르 하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 Bernart de Ventadorn다. 그는 궁정 사랑의 정서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노래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기쁨과 좌절, 높이 날아오르는 마음과 한순간 추락하는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트루바두르의 사랑은 단순히 “보고 싶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말과 태도를 단련시키며, 때로는 고통을 통해 더 섬세한 존재로 만든다. 베르나르의 노래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을 움직이는 하나의 윤리와 예술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 독자가 느끼는 재미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을 개인의 선택과 감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중세 궁정 사랑에서 사랑은 교양, 신분, 평판, 언어 능력, 예절과도 연결되었다. 쉽게 말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했다.


코리의 중간생각

트루바두르를 읽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분명 아름다운 사랑 노래인데, 그 안에는 신분 질서와 권력관계도 들어 있다.
귀부인을 찬미한다고 해서 여성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도 아니고, 사랑을 고귀하게 말한다고 해서 현실의 욕망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트루바두르는 마냥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중세 사람들이 사랑을 어떻게 포장하고, 다듬고, 사회적 언어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창문처럼 느껴진다.
아름답지만 순진하지 않고, 세련됐지만 인간적이다. 바로 그 지점이 트루바두르 문학의 맛이다.

한줄팁: 트루바두르를 공부할 때는 “음유시인”보다 오크어 궁정 서정시와 피나모르라는 키워드로 함께 보면 훨씬 깊게 이해된다.

실사례 3: 조프레 루델과 ‘먼 사랑’

트루바두르 문학에서 특히 유명한 주제 중 하나가 먼 사랑 amor de lonh이다. 이 표현과 연결되는 대표 인물이 조프레 루델 Jaufre Rudel이다. 그는 멀리 있는 여인을 사랑한다는 전설적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먼 사랑은 중세 궁정 사랑의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은 가까이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그리워하는 것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기에 오히려 상상은 더 커지고, 사랑은 현실보다 더 순수하고 고귀한 것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실제 연애담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중세 문학에서 이런 설정은 실제 경험과 문학적 장치가 섞여 있다. 중요한 것은 조프레 루델의 이야기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닿을 수 없음” 자체를 사랑의 미학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노래와 글로 오래 붙잡는 감각에 가깝다. 다만 트루바두르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개인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궁정 예절과 기사도 정신의 일부가 되었다.


여성 트루바두르, 트로바이리츠도 있었다

트루바두르 문화에서 꼭 짚어야 할 존재가 있다. 바로 여성 음유시인, 트로바이리츠 trobairitz다. 트로바이리츠는 여성 트루바두르를 뜻한다. 오랫동안 중세 문학사는 남성 작가 중심으로 설명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성도 궁정 사랑의 언어를 직접 사용하고 변형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디아 백작부인 Comtessa de Dia이다. 그녀의 「A chantar m’er de so q’ieu no volria」는 여성 트루바두르 작품 중 음악이 전해지는 매우 중요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Women and Medieval Song 자료는 트로바이리츠가 남성 트루바두르의 여성 counterpart이며, 디아 백작부인의 이 노래가 음악과 함께 전해지는 유일한 트로바이리츠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궁정 사랑은 남성이 여성을 숭배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여성도 그 언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노래했다. 디아 백작부인의 노래는 기다리는 여성, 찬미받는 여성만이 아니라 욕망하고 말하고 판단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중세라고 해서 여성이 언제나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현실의 제약은 컸다. 하지만 궁정 문학 안에서는 여성이 시적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트로바이리츠는 바로 그 틈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다.

트루바두르와 기사도 정신

트루바두르의 노래는 기사도와도 깊게 연결된다. 기사도 chivalry는 단지 말 타고 싸우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상적으로는 용기, 충성, 명예, 예절, 약자 보호, 귀부인에 대한 존중을 포함했다. 물론 현실의 기사들이 언제나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기준을 세웠다.

트루바두르의 사랑 노래는 기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강한 사람이라면 말도 아름다워야 한다.”
“사랑을 말하려면 예절을 배워야 한다.”
“힘만으로는 귀족이 될 수 없다.”
“진짜 품위는 절제와 충성에서 나온다.”

이런 점에서 트루바두르 문학은 중세 귀족 사회의 감정 교육서처럼 기능했다. 사랑 노래였지만, 동시에 “궁정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문화 장치였다.


트루바두르와 음악, 실제로 노래였을까

트루바두르 작품은 시이면서 노래였다. 다만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를 보면 모든 작품의 선율이 완전하게 보존된 것은 아니다. Oxford Bibliographies in Music은 트루바두르 노래 가운데 음악 기보가 전해지는 것은 몇몇 필사본 속의 몇백 곡 수준이며, 북프랑스 트루베르 trouvère 노래와 비교하면 보존 양상도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트루바두르 문화가 원래 작았다는 뜻이 아니다. 중세의 노래는 공연과 구전, 필사본 전승이 함께 얽혀 있었다. 어떤 노래는 궁정에서 불렸지만 기록되지 않았을 수 있고, 어떤 작품은 가사만 남았을 수 있다. 그래서 트루바두르 연구는 문학사이면서 동시에 음악사, 필사본 연구, 언어사 연구가 된다.

여기서 샹소니에 chansonnier라는 전문용어도 중요하다. 샹소니에는 중세 노래를 모아 적은 노래책, 즉 가요 필사본이다.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노래는 이런 필사본을 통해 후대에 전해졌다.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미네징거의 차이

트루바두르와 헷갈리기 쉬운 말이 있다. 트루베르 trouvère미네징거 Minnesänger다.

트루바두르는 주로 남프랑스 오크어권에서 활동했다. 트루베르는 북프랑스의 옛 프랑스어권에서 활동한 시인·작곡가였다. 미네징거는 독일어권에서 궁정 사랑을 노래한 시인·음악가를 가리킨다. Oxford 자료는 트루바두르가 남부 프랑스의 오크어권, 트루베르가 북부 프랑스의 고프랑스어권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구분지역언어특징
트루바두르남프랑스, 오크어권오크어, 프로방스어피나모르와 칸소의 중심
트루베르북프랑스고프랑스어트루바두르 전통을 북부 궁정문화로 변형
미네징거독일어권중세 고지 독일어독일식 궁정 사랑, Minnesang 전통

이 흐름을 보면 트루바두르가 단지 한 지역의 유행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크어 궁정 서정시는 북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카탈루냐 등으로 영향을 넓혔다. Oxford TORCH도 오크어가 시의 언어로 유명해져 카탈루냐와 이탈리아 시인들이 노래 언어로 채택했고,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 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트루바두르의 쇠퇴와 알비 십자군

트루바두르 문화는 영원히 이어지지 않았다. 13세기 들어 남프랑스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알비 십자군 Albigensian Crusade이다. 이는 남프랑스의 카타리파와 지역 귀족 세력, 북프랑스 왕권과 교황권이 얽힌 대규모 종교·정치적 충돌이었다.

트루바두르 문화의 쇠퇴를 알비 십자군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문학적 유행의 변화, 후원 구조의 변화, 지역 정치 질서의 변화도 함께 작용했다. 다만 Cambridge의 Early Music History 논문 요약은 13세기 오크어권이 알비 십자군과 그 이후의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이것이 트루바두르 노래와 작곡가 수의 감소에 적어도 일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설명한다.

결국 트루바두르의 시대는 남프랑스 궁정문화의 번영과 함께 꽃피고, 그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면서 서서히 약해졌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노래의 현장이지, 영향력은 아니었다. 트루바두르가 만든 궁정 사랑의 언어는 이후 기사문학, 로맨스 문학, 프랑스 서정시, 독일 미네장, 르네상스 연애시까지 길게 이어졌다.

트루바두르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

트루바두르를 공부하면 중세 유럽사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중세를 흔히 전쟁, 성, 기사, 교회, 흑사병, 십자군 같은 단어로 기억한다. 그런데 트루바두르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사랑을 얼마나 정교하게 말하려 했는지 보여준다.

그들에게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면서도 사회적 언어였다. 사랑을 잘 말하는 것은 곧 교양을 갖춘 귀족다운 행동이었다. 노래는 오락이면서도 평판을 만드는 수단이었다. 시는 감정 표현이면서도 권력관계의 일부였다.

또한 트루바두르는 유럽 문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라틴어 중심의 교회 문화에서 벗어나, 지역 언어로 인간의 감정과 세속적 삶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오크어 서정시는 이후 여러 지역의 민중어 문학 성장에 자극을 주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트루바두르는 “사랑을 콘텐츠로 만든 최초의 궁정 크리에이터”에 가깝다. 다만 가볍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귀족 사회의 예절과 권력, 언어와 음악, 성별과 욕망이 모두 들어간 복합적인 문화였다.


트루바두르를 이해하면, 중세 유럽의 문화와 예술이 단순히 성당과 기사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고딕 성당의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신앙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면,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 음악은 중세인의 귀로 듣는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트루바두르의 궁정 사랑 노래와 기사 문학이 더해지면서, 중세 유럽은 건축·음악·문학이 서로 맞물린 하나의 생활문화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 문화와 예술 완전정리: 고딕 건축·음악·문학으로 읽는 생활사  를 함께 보면, 트루바두르가 왜 단순한 음유시인이 아니라 궁정 사회의 감정과 예절을 노래한 문화적 존재였는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당은 신앙을 세우고, 음악은 공동체의 리듬을 만들고, 문학은 사랑과 명예를 말하게 했습니다. 트루바두르는 바로 그 문학과 음악이 만나는 자리에서 중세인의 마음을 노래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리의 생각 정리

트루바두르는 단순한 중세 악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크어로 시를 짓고 노래한 궁정 서정시의 창작자였다.

트루바두르가 노래한 피나모르, 즉 궁정 사랑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기사도, 봉건제, 귀족 예절이 섞인 문화적 언어였다.

기욤 9세,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 조프레 루델 같은 인물은 트루바두르 문학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형식을 가졌는지 보여준다.

여성 트루바두르인 트로바이리츠의 존재는 중세 궁정문학 안에서도 여성이 자기 목소리로 사랑과 욕망을 말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결국 트루바두르는 중세 유럽을 “전쟁과 종교의 시대”로만 보지 않게 해준다. 그 시대 사람들도 사랑을 고민했고, 말의 품격을 따졌고, 닿을 수 없는 마음을 예술로 바꾸려 했다. 그래서 트루바두르의 노래는 오래된 중세의 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문학사라고 볼 수 있다.


트루바두르란 Q&A

Q1. 트루바두르와 음유시인은 같은 뜻인가요?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어로는 트루바두르를 흔히 음유시인이라고 번역하지만, 역사적으로 트루바두르는 11~13세기 남프랑스 오크어권 궁정에서 활동한 시인·작곡가·공연자를 가리키는 더 구체적인 말입니다. 즉 모든 음유시인이 트루바두르는 아니지만, 트루바두르는 중세 음유시인의 대표적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Q2. 트루바두르는 사랑 노래만 불렀나요?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장르는 궁정 사랑을 노래한 칸소이지만, 정치와 사회를 풍자한 시르벤테스, 새벽 이별을 다룬 알바, 목가적 만남을 그린 파스토렐라, 논쟁 형식의 텐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트루바두르는 사랑의 시인이면서 동시에 궁정 사회의 관찰자이자 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Q3. 트루바두르가 중세 유럽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트루바두르는 오크어 같은 지역 언어로 세속적 감정과 귀족문화를 노래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또한 피나모르, 궁정 사랑, 기사도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고, 북프랑스의 트루베르와 독일의 미네징거 같은 다른 유럽 서정시 전통에도 자극을 주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사랑관과 문학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입니다.

트루바두르란 참고자료

이 글은 중세 오크어 문학, 트루바두르 음악, 궁정 사랑과 피나모르 연구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특히 Oxford Bibliographies의 트루바두르·트루베르 개요는 지역과 언어 구분을 잡는 데 참고했고, 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The Troubadours』 자료는 궁정문화와 피나모르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참고했습니다.

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중세 궁정 사랑 설명은 12세기 남프랑스 트루바두르 노래가 궁정 사랑의 중요한 초기 표현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Occitanica의 fin’amor 설명과 KCI 등재 논문 「트루바두르 시에 나타난 ‘핀아무르’의 문학적 표현과 사회적 의미」는 피나모르의 개념과 기욤 9세에서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로 이어지는 흐름을 정리하는 데 참고했습니다.

Women and Medieval Song의 트로바이리츠 자료는 디아 백작부인과 여성 트루바두르의 의미를 정리하는 데 참고했습니다.


트루바두르란   단순한 거리의 악사가 아니라, 중세 궁정에서 사랑·명예·권력을 노래한 오크어 서정시의 창작자였다.
트루바두르란 단순한 거리의 악사가 아니라, 중세 궁정에서 사랑·명예·권력을 노래한 오크어 서정시의 창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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